우리들의 이야기

사람들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는다. 사는대로 생각할 뿐이다.

2026.08.06
뜻을 품고 그 뜻을 이루는 경우를 우리는 치하하고 축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걸 축하하고 치하할까요? 흔하다면 축하할까요? 흔하지 않으니 희귀성이 있으니, 축하니 치하니 하는 기념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독립투사라든가, 애국 지사등을 치하하는 일은 왜 있는 것일까요? 늘상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왜 그런 일이 늘상 있지 않는가? 우리는 그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런 일은 왜 드물게 일어나서 치하와 존경의 자리에 서게 되는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덕이 되기 보다 개인적으로는 해가 되지만 공동체적으로는 덕을 끼치는 행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일어나기를 바라는 공동체적 심정으로 그것을 높게 세워 찬양합니다. '다음에도 나 말고 누군가가 그런 일을 좀 해줘~'라는 심정으로 일까요? 그것을 인간 존재적 차원으로 가지고 오면, 사람은 생각하는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는대로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들이 생기는 거 같습니다. 인간은 사는 대로 생각하는 존재, 즉 환경과 주변 여건과 관계 등에 영향을 받으며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높은 뜻'대로 사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말할 때, 우리 주변을 살펴보는 일은 꽤나 중요한 점검 과정인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말은 내 주변 어디에서 연원이 되었는가하는 것을 돌아볼 때, 뭔가 치우침이 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끔 치우침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대단한 치우침을 설파하는 자리가 가끔씩 있는데, 그건 종교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치우침을, 부다께서는 '자비'의 치우침을 이야기하셨죠. 아름다운 치우침이 종교화 된 것은 그건 또 그만큼 도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종교적 치우침과 우리 일상과 환경에서 나오는 치우침은 차원이 다르죠. 종교의 치우침은 가장 '이타적' 이자만, 개인의 치우침은 매우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세제의 내용을 보고, 저는 이 세제를 만든 사람들의 치우침은 어디서 연원이 되고 있는가를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고민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층층히 쌓여 왔었습니다. 결국 사람은 환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죠. 이번 상속 증여세 관련 세제는, 주식을 보유한 소액주주, 일반주주라면 상정할 수 없는 파렴치한 세제입니다. 왜 이게 가능했을까요? 공무원분들이 종교적 '사랑'의 치우침이 가득한 분들이 아니라면, 이 분들 조차 개인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럼, 그분들의 환경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겠죠? 세제라는 것은 재산이란 것과 관련이 되어 있으니, 여기서 환경이란 그분들의 자산 상황이 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공무원들은 주식을 잘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유 자체를 매우 까다롭게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죠. 공무원들이 주식을 보유할 경우, 보유한 해당 기업을 위해 정책을 조성하여 부당한 치우침이 있기때문에 그런 것들을 사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주식 보유에 제한은 가한 좋은 뜻의 조치가 되겠죠. 아 물론 기업이 현대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성찰이 얼마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만... 그럼 부동산 자산 현황은 어찌될까요? 이 부분은 분석을 해 보아야겠지만, 부동산 보유나 소유는 그에 대한 편향을 일으키는 도구가 되지는 않을까요? 만약 그 부동산이 절대적이고 유일한 재산일 경우엔 어떨까요? 우리가 주식 보유를 -치우침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 때문에 보유를- 막고 있다면 주식에 대해서만 그러한 조치를 할 게 아니라, 전체 보유 자산에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의식주라는 필수 영역은 주식과 다르다는 해명이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만, 월급쟁이가 평생 노력해서 거주할 수 있는 부동산과 그것을 뛰어 넘는 규모의 부동산의 경우는 상황이 같지 않겠죠. 저는 어제 뉴스하이킥에 나가서, 세제를 만든 해당 공무원들이 '주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그 다음으로 하고 싶지만 입을 막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환경에 제약을 받고 규정되는 존재입니다.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제한하고 규정하는 것이죠.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AI 케팩스 대전도 하드웨어가 없이 소프트웨어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려서는 소프트웨어가 핵심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나이 먹어보니, 하드웨어가 매우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사회적으로 공론화 해야 할 때입니다. 어떤 하드웨어가 지속가능성을 우리에게 만들어 줄 것인가 하고 말이죠.